독일처럼 행정 처리가 정교하기로 유명한 선진국에서 주(州) 의회 선거 전체가 전면 무효화되고 시장이 바뀐 사건입니다.
1단계 : 발단 — '행정 지옥'이 된 선거 당일
2021년 9월 26일
베를린 주 정부의 과도한 행정적 욕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이날 베를린에서는 무려 4가지 투표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독일 연방의회 총선 (국회의원)
베를린 주 의회 선거
베를린 구 의회 선거
대형 부동산 기업 국유화 주민투표
게다가 같은 날 설상가상으로 도시 한복판에서 '베를린 마라톤'까지 개최되면서 도시 전체의 교통과 물류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선거 행정은 붕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투표용지 대란: 마라톤으로 도로가 통제되어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배달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용지가 떨어지자 투표소가 몇 시간씩 닫혔고, 다급해진 투표 관리원들이 선거용지를 복사기로 무단 복사해서 나눠주며 기표하게 하는 불법 행위가 실제로 자행되었습니다. 다른 선거구의 투표용지가 배송되어 엉뚱한 사람에게 투표한 곳도 많았습니다.
출구조사 오염: 기표소 부족으로 유권자들의 대기 줄이 끝없이 길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법정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 저녁 8시까지 투표가 이어졌는데, 이미 오후 6시 정각에 방송사에서 당선 예측 출구조사가 발표된 이후에 줄을 서서 투표한 유권자들이 대거 발생하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공정성'이 완전히 훼손되었습니다.
2단계 : 전개 — 법원의 엄중한 '전면 무효' 판결
2022년 11월 16일
사태를 조사해 온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사상 초유의 판결을 내립니다.
"2021년 선거 당시 발생한 오류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심각하여, 실제 의석 배분과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해 베를린 주 의회 및 구 의회 선거 결과를 전면 무효화한다."
독일 헌정 사상 대도시 전체의 지방선거를 통째로 무효로 돌리고 재선거를 명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재판소는 판결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재선거를 치르라고 명령했습니다.
3단계 : 결과 — 주 의회 전면 재선거와 정권 교체
2023년 2월 12일
법원 명령에 따라 베를린 주 의회 전체 재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정치적 격변: 유권자들은 선거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기존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을 외면했고, 사민당은 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시장 교체: 반면 야당이었던 기독교민주연합(CDU)이 제1당으로 압승을 거두며, 기민련의 카이 웨그너(Kai Wegner)가 새로운 베를린 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행정 실패가 고스란히 정권 교체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4단계 : 마무리 — 국회의원(연방 총선) 부분 재선거
2024년 2월 11일
당시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을 뽑는 '연방 총선' 투표도 함께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후 처리도 필요했습니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국가 전체 선거를 다시 할 수는 없으므로, 베를린 내에서 부실 관리가 가장 심각했던 455개 투표구를 콕 집어 해당 지역만 총선 재선거를 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 최종 보완 선거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되면서 2021년부터 이어진 베를린 선거 잔혹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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